이번 총선의 20대 투표율 때문에 20대들이 엄청난 욕을 먹고 있다. 올해로 30이 된, 정치의식이 충만한 나 역시 속으로 그들을 무진장 욕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미 여러 사람이 대놓고 하고 있으니 나까지 그럴 필요는 없고, 그것보다는 왜 이런 사태가 왔는지에 대해 면밀히 따져보니, 사실 19%가 투표를 했다는 것이, 50%밖에 한나라당을 찍지 않았다는 것이 기적같은 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나에게 특별한 반전이 없었던 들, 나 역시 친구들과 같이 선거날 놀러가거나 한나라당을 찍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나는 98학번으로
2000년에 처음으로 군대에서 이등병때 국회의원 투표를 했고
2002년에 3학년으로 복학해서 지자체와 대통령 선거에서 투표를 했다.
2004년에 국회의원 투표를 했으며
2006년 지자체,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은 사정상 하지 못했다.
우리 집은 조선일보를 구독했다. 고등학생때 나름대로 신문은 읽는 편이었지만, 정치면은 거의 관심이 없었다. 조선일보의 북 리뷰란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부분이었는데, 그 중 가장 맘에 들었던 것은 체게바라 평전에 관한 내용이었다. 확실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맨마지막 부분이 맘에 들었는데, '당신도 자신의 신념을 위해 세상과 맞서지 않겠는가' 뭐 대충 그런 내용이었다.
당시에는 일본은 없다라는 책이 굉장히 히트했다. 방송기자 출신의 전여옥이라는 사람이 쓴 책이었는데, 책은 중학교때 이미 유명했지만 나는 고등학교때 읽었다. 나름대로 잘 쓴 책이라고 생각했다.
고 1때, 이문열이라는 작가를 알게 되었다. 사람의 아들, 시인,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이 세편을 읽고 나는 그의 팬이 되었다. 논란이 많은 작가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여튼 나는 그의 책을 통해서 이 세상이 얼마나 험란한지, 세상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세상을 비판(이라기보다는 비관)적으로 바라보게 되었지만, 그것으로 나는 웬지 다른 애들보다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특히 이문열이 자기는 당당히 전두환을 지지했다는 (혹은 했다는 투의)발언을 했다는 것을 알았는데, 난 이문열의 작품을 믿었던만큼 이문열도 믿었기에 난 아무런 부담없이 '전두환이 알고보면 나쁜사람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_-)a 고3때 이문열은 '선택'이라는 소설을 냈는데, 이해가 안가는 부분도 있지만, 이 번에도 난 그를 믿었던만큼 그의 작품도 믿었기에..... 였다.
김홍신이라는 사람을 우리 엄마가 참 좋아했다. 지금도 참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 사람은 한나라당(혹은 신한국당?)소속이었다.
나는 정치와 역사라는 과목을 무지 싫어했다.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외우기만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고3때는 나는 수능으로 바빴으며, 논술 공부를 위해 국어 선생은 사설을 스크랩하고 감상을 적으라고 했다. 우리 집은 조선일보를 보고 있었는데, 그 때는 사설의 내용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고 그냥 내용을 간추리는 정도에 불과 했다. 숙제를 해 간 첫날, 국어 선생은 내 숙제를 보더니,사설은 조선일보가 제일 좋다며 좋은 신문 보고 있구나 하고 날 칭찬해 주었다.
서울 불바다 발언, 핵 사태, 김일성 사망 등, 북한에 대한 이미지는 정말로 최악이었다.
유시민이 쓴 역사책을 읽었지만, 그것이 정치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아직 깨닫지 못했다.
고1때 연세대에서 데모하던 '한총련' 대학생들이 학교 기물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았다며, 신문에는 주사파, 폭력, 이러한 단어들과 함께 일면에 보도했다. 학교 선생은 대학생들이 나쁜 사람들의 꼬임에 빠져 북한 사상을 신봉하게 되어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고 했다. 당시에는 피라미드업체의 피해나 사이비종교가 문제가 되었는데, 무엇이던 간에 꼬임에 빠지는 일은 없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런 상태로 나는 수능을 봤고 IMF가 터졌다. 똑똑히 기억하는 것이 있다면 분명히 IMF전날 까지도 한국 경제는 끄떡없다는 조선일보의 헤드라인이었다. 그 당시에는 '우리 나라 신문이 이렇게 예측을 못해서야'라며 그냥 우리 신문의 능력부족이거나 제대로 된 자료를 기자들이 못받아서 틀린거겠지 하고 생각했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 동네 아는 아저씨가 그 학교 선배라는 걸 알게 되었는데, 쓸데없이 데모같은 거 하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하라고, 이상한 '한총련' 같은 사람들하고 어울리지 말라고, 걔네들하고 어울리면 인생 피곤하댄다.
총학생회 오리엔테이션에 갔다. 대학생활을 소개받는 시간보다 민중가요를 배우는 시간이 더 길었다. 노래는 꼭 북한노래 같았고, 율동은 유치하거나 과격했다. 그리고서는 구호를 외치며 단결을 강조했다. 텔레비전에서 사이비종교 보도 프로를 봤을 때의 느낌과 비슷했다.
나는 솔직히 대학에 가고 싶은 맘은 없었다. IMF때문에 집안 사정이 좀 어려울 것이다 라고 했지만, 부모님은 전혀 내색하지 않으셨고, 그냥 너는 공부만 열심히 해서 대학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고 하셨다. 대학을 들어가서도 별 생각없이 써클활동이나 열심히 할 생각이었다. 부모님이 '너도 아르바이트라도 좀 해서 등록금 좀 보태라'라고 하셨을 때, '그럴 바에는 나 그냥 학교 안다닐래'라고 대답했고 그 이후 부모님은 아르바이트 얘기는 일체 하지 않으셨다. 나는 그렇게 철이 없었다.
대학생활을 별 특징없이 그렇게 보냈지만, 정치에 대해 얘기하는 집단은 총학의 대자보가 전부였고, 내용도 신자유주의라는 말과 함께 김대중이 나쁜 놈이라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가끔 페미니즘 관련된 내용이 나왔는데, 나는 이문열의 '선택'의 내용을 상기시키며 속으로 열심히 그 내용을 반박했다. 나 자신은 나름대로 대자보를 열심히 본 편이지만, 굵은 매직으로 쓴 글씨, 글씨를 반듯이 쓰기 위한 접은 자국, 부분부분을 강조하기 위한 형광펜, 선동하는 듯 보이는 대자보의 마지막 문구들로 채원진 대자보는 언제나 이렇게 말하는 듯 했다. '너희는 알아야만해, 이 무식한 넘들아, 내가 지금 너희들을 계몽하는 중이야' 됐거든? 나는 그런거 안믿거든?
2학년을 마친 후 나는 군대에 갔으며, 이등병 때 처음으로 국회의원 투표를 했다. 우편을 통해 부재자 투표자를 위한 선거 홍보물을 받았지만, 무슨 내용인지 특별히 와닫는 것은 없었고, 그냥 어디어디를 개발하겠다는 내용이 눈에 들어왔을 뿐이다. 그렇게 별 생각없이 투표를 했다. 만약 내가 사회에 있었다면 아마도 투표를 안했을 것이다.
점호시간 청소를 하는 중(선거 당일인지 다음날인지는 지금도 기억이 잘 안난다.) 우리 동네에서는 내가 찍은 후보가 떨어졌다는 것을 확인했다. 민주당의 어느 국회의원이 부산에서 출마해서 분발했지만, 결국 떨어졌으며, 지역주의에 도전한 의미있는 선거였다라는 뉴스를 얼핏 본 것이 기억에 남았다.
여기까지가 내가 22살까지의 나의 인생이었지만, 다른 20대들과 크게 다른 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복학을 하면 취업준비때문에 바쁠 것이고, 그렇게 정신 없이 살다보면 26살에 졸업할 것이다.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20대 중반까지 대학교 안에서 세상과 단절 된 채 그렇게 살아갈 것이고, 조선일보의 세련된 문체는 민노당과 학생회의 거친 대자보 내용보다 훨씬 논리적으로 들렸을 것이다. 진보라 자처하는 사람들이 민주주의외 민중은 위대하다라는 말만 되풀이하는 것에 무척이나 짜증이 났을 것이다.
이것이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보통의 20대의 모습이 아닐까? 지금의 20대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20년을 넘게 살았지만, 정치, 선거, 민주주의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가르쳐준 곳은 아무 곳도 없었다.
참고로 나는 98학번으로
2000년에 처음으로 군대에서 이등병때 국회의원 투표를 했고
2002년에 3학년으로 복학해서 지자체와 대통령 선거에서 투표를 했다.
2004년에 국회의원 투표를 했으며
2006년 지자체,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은 사정상 하지 못했다.
우리 집은 조선일보를 구독했다. 고등학생때 나름대로 신문은 읽는 편이었지만, 정치면은 거의 관심이 없었다. 조선일보의 북 리뷰란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부분이었는데, 그 중 가장 맘에 들었던 것은 체게바라 평전에 관한 내용이었다. 확실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맨마지막 부분이 맘에 들었는데, '당신도 자신의 신념을 위해 세상과 맞서지 않겠는가' 뭐 대충 그런 내용이었다.
당시에는 일본은 없다라는 책이 굉장히 히트했다. 방송기자 출신의 전여옥이라는 사람이 쓴 책이었는데, 책은 중학교때 이미 유명했지만 나는 고등학교때 읽었다. 나름대로 잘 쓴 책이라고 생각했다.
고 1때, 이문열이라는 작가를 알게 되었다. 사람의 아들, 시인,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이 세편을 읽고 나는 그의 팬이 되었다. 논란이 많은 작가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여튼 나는 그의 책을 통해서 이 세상이 얼마나 험란한지, 세상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세상을 비판(이라기보다는 비관)적으로 바라보게 되었지만, 그것으로 나는 웬지 다른 애들보다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특히 이문열이 자기는 당당히 전두환을 지지했다는 (혹은 했다는 투의)발언을 했다는 것을 알았는데, 난 이문열의 작품을 믿었던만큼 이문열도 믿었기에 난 아무런 부담없이 '전두환이 알고보면 나쁜사람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_-)a 고3때 이문열은 '선택'이라는 소설을 냈는데, 이해가 안가는 부분도 있지만, 이 번에도 난 그를 믿었던만큼 그의 작품도 믿었기에..... 였다.
김홍신이라는 사람을 우리 엄마가 참 좋아했다. 지금도 참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 사람은 한나라당(혹은 신한국당?)소속이었다.
나는 정치와 역사라는 과목을 무지 싫어했다.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외우기만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고3때는 나는 수능으로 바빴으며, 논술 공부를 위해 국어 선생은 사설을 스크랩하고 감상을 적으라고 했다. 우리 집은 조선일보를 보고 있었는데, 그 때는 사설의 내용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고 그냥 내용을 간추리는 정도에 불과 했다. 숙제를 해 간 첫날, 국어 선생은 내 숙제를 보더니,사설은 조선일보가 제일 좋다며 좋은 신문 보고 있구나 하고 날 칭찬해 주었다.
서울 불바다 발언, 핵 사태, 김일성 사망 등, 북한에 대한 이미지는 정말로 최악이었다.
유시민이 쓴 역사책을 읽었지만, 그것이 정치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아직 깨닫지 못했다.
고1때 연세대에서 데모하던 '한총련' 대학생들이 학교 기물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았다며, 신문에는 주사파, 폭력, 이러한 단어들과 함께 일면에 보도했다. 학교 선생은 대학생들이 나쁜 사람들의 꼬임에 빠져 북한 사상을 신봉하게 되어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고 했다. 당시에는 피라미드업체의 피해나 사이비종교가 문제가 되었는데, 무엇이던 간에 꼬임에 빠지는 일은 없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런 상태로 나는 수능을 봤고 IMF가 터졌다. 똑똑히 기억하는 것이 있다면 분명히 IMF전날 까지도 한국 경제는 끄떡없다는 조선일보의 헤드라인이었다. 그 당시에는 '우리 나라 신문이 이렇게 예측을 못해서야'라며 그냥 우리 신문의 능력부족이거나 제대로 된 자료를 기자들이 못받아서 틀린거겠지 하고 생각했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 동네 아는 아저씨가 그 학교 선배라는 걸 알게 되었는데, 쓸데없이 데모같은 거 하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하라고, 이상한 '한총련' 같은 사람들하고 어울리지 말라고, 걔네들하고 어울리면 인생 피곤하댄다.
총학생회 오리엔테이션에 갔다. 대학생활을 소개받는 시간보다 민중가요를 배우는 시간이 더 길었다. 노래는 꼭 북한노래 같았고, 율동은 유치하거나 과격했다. 그리고서는 구호를 외치며 단결을 강조했다. 텔레비전에서 사이비종교 보도 프로를 봤을 때의 느낌과 비슷했다.
나는 솔직히 대학에 가고 싶은 맘은 없었다. IMF때문에 집안 사정이 좀 어려울 것이다 라고 했지만, 부모님은 전혀 내색하지 않으셨고, 그냥 너는 공부만 열심히 해서 대학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고 하셨다. 대학을 들어가서도 별 생각없이 써클활동이나 열심히 할 생각이었다. 부모님이 '너도 아르바이트라도 좀 해서 등록금 좀 보태라'라고 하셨을 때, '그럴 바에는 나 그냥 학교 안다닐래'라고 대답했고 그 이후 부모님은 아르바이트 얘기는 일체 하지 않으셨다. 나는 그렇게 철이 없었다.
대학생활을 별 특징없이 그렇게 보냈지만, 정치에 대해 얘기하는 집단은 총학의 대자보가 전부였고, 내용도 신자유주의라는 말과 함께 김대중이 나쁜 놈이라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가끔 페미니즘 관련된 내용이 나왔는데, 나는 이문열의 '선택'의 내용을 상기시키며 속으로 열심히 그 내용을 반박했다. 나 자신은 나름대로 대자보를 열심히 본 편이지만, 굵은 매직으로 쓴 글씨, 글씨를 반듯이 쓰기 위한 접은 자국, 부분부분을 강조하기 위한 형광펜, 선동하는 듯 보이는 대자보의 마지막 문구들로 채원진 대자보는 언제나 이렇게 말하는 듯 했다. '너희는 알아야만해, 이 무식한 넘들아, 내가 지금 너희들을 계몽하는 중이야' 됐거든? 나는 그런거 안믿거든?
2학년을 마친 후 나는 군대에 갔으며, 이등병 때 처음으로 국회의원 투표를 했다. 우편을 통해 부재자 투표자를 위한 선거 홍보물을 받았지만, 무슨 내용인지 특별히 와닫는 것은 없었고, 그냥 어디어디를 개발하겠다는 내용이 눈에 들어왔을 뿐이다. 그렇게 별 생각없이 투표를 했다. 만약 내가 사회에 있었다면 아마도 투표를 안했을 것이다.
점호시간 청소를 하는 중(선거 당일인지 다음날인지는 지금도 기억이 잘 안난다.) 우리 동네에서는 내가 찍은 후보가 떨어졌다는 것을 확인했다. 민주당의 어느 국회의원이 부산에서 출마해서 분발했지만, 결국 떨어졌으며, 지역주의에 도전한 의미있는 선거였다라는 뉴스를 얼핏 본 것이 기억에 남았다.
여기까지가 내가 22살까지의 나의 인생이었지만, 다른 20대들과 크게 다른 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복학을 하면 취업준비때문에 바쁠 것이고, 그렇게 정신 없이 살다보면 26살에 졸업할 것이다.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20대 중반까지 대학교 안에서 세상과 단절 된 채 그렇게 살아갈 것이고, 조선일보의 세련된 문체는 민노당과 학생회의 거친 대자보 내용보다 훨씬 논리적으로 들렸을 것이다. 진보라 자처하는 사람들이 민주주의외 민중은 위대하다라는 말만 되풀이하는 것에 무척이나 짜증이 났을 것이다.
이것이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보통의 20대의 모습이 아닐까? 지금의 20대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20년을 넘게 살았지만, 정치, 선거, 민주주의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가르쳐준 곳은 아무 곳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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